41편의 영화, 그러나 선택지는 5편뿐이었다

선택이 아닌 유도된 소비, 사라지는 영화 다양성과 선택권

2020~2026 KOBIS 데이터 분석
스크린 독과점, 극장가의 '상수'

41편의 영화가 걸렸지만
실질적 선택지는 5편에 불과

"이미 선택된 영화만 보게 되는 구조"
변동 부율제 등 제도 개선 필요성 제기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관객들이 영화표를 예매하고 있는 모습
지난 9일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관객들이 영화표를 예매하고 있다.

“이곳에서만 상영해서 오게 되었어요”
“소규모 영화는 살아남기 힘든 것 같아요”

지난 9일 오후 3시,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관람을 마친 관객들이 하나둘씩 영화관을 빠져나오고 있다. 김연두(32)씨는 이날 영화 ‘플레이브 아시아 투어 [대쉬: 퀀텀 리프] 앙코르 인 시네마’을 보기 위해 CGV 용산아이파크몰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김 씨는 "이 영화는 상영관이 많지 않아 일부 극장에서만 볼 수 있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소규모 영화들은 극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구조”라며, “흥행이 보장된 대형 영화에 스크린이 집중되면 소규모 영화는 결국 OTT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관객들의 이러한 우려는 현재 극장가가 마주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2026년에 들어 매달 평균 19편의 영화가 개봉했지만, 이들 중 관객이 접하는 작품은 소수에 불과했다. 특정 영화에 스크린이 집중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영화 선택권과 다양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왕과 사는 남자」가 16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다. 그러나 화려한 성적 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지난 3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스크린 독과점은 관객들의 선택권을 박탈하며, 상영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니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왕과 사는 남자」에 집중된 스크린 배분이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흥행작이 등장할 때마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반복된다. 그러나 논란은 대부분 특정 영화를 둘러싼 공방에 그친다. 정작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얼마나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들이 관객과 만날 기회를 공정하게 얻고 있는지다.

본지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KOBIS)의 일별 박스오피스 및 스크린 점유율 자료를 분석해 2020년부터 2026년 상반기까지 국내 극장가의 스크린 배분 구조를 살펴봤다. 이를 통해 어떤 영화가 얼마나 많은 스크린을 차지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영화들이 관객과 만날 기회를 잃었는지를 추적했다.

독과점은 예외가 아니라 상수다

스크린 독과점은 일부 흥행작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까. 데이터 분석 결과, 스크린 집중은 특정 영화가 아닌 극장가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프랑스는 영화편성약정으로 한 영화의 극장 내 하루 상영횟수를 약 30%로 제한한다. 본지는 이를 참조해 한 영화가 하루 전체 스크린의 30% 이상을 차지한 경우를 스크린 쏠림으로 봤다.

지난 6년 동안 단일 영화가 하루 전체 스크린의 30% 이상을 차지한 날은 총 925일이었다. 전체 기간의 39.6%다. 열흘 중 나흘 가까이가 특정 영화 중심으로 운영된 셈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쏠림은 특정 작품만의 일이 아니다. 분석 결과, 같은 기간 스크린 점유율 30%를 넘긴 영화는 총 89편이었다. 특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하루 기준 전체 스크린의 65.6%를 차지했다. 조사 기간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관객이 고를 수 있는 영화는 여러 편이었지만, 실제 상영 기회는 한 영화에 크게 몰렸다. 영화관에 다양한 작품이 걸려 있어도 관객이 실제로 접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쏠림은 단기간에 그치지 않았다. 「왕과 사는 남자」는 48일 동안 스크린 점유율 30% 이상을 유지했다. 「파묘」는 34일, 「서울의 봄」은 28일 동안 30%선을 넘었다. 흥행작 한 편이 장기간 시장을 장악하는 구조가 반복된 것이다.

2026년 상반기 데이터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시장 집중도를 보여주는 ‘허핀달-허쉬만 지수(HHI)’는 올해 3월 1997을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HHI가 1800을 넘으면 고집중 시장으로 분류되는데, 당시 극장가는 이 기준을 훌쩍 넘어 섰다. 쉽게 말해 다양한 영화가 고르게 경쟁하는 시장이라기보다, 소수의 흥행작에 스크린이 집중된 상태였다는 의미다.

상위 3개 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을 뜻하는 집중률(CR3) 역시 같은 달 65.7%를 기록했다. 전체 스크린의 약 3분의 2가 단 세 편의 영화에 배정된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수는 많아 보여도 실제 선택 가능한 작품은 몇 편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더 주목할 점은 상영작 수와 실제 경쟁력의 차이다. 2026년 3월 극장가에는 총 41편의 영화가 걸렸다. 그러나 실질적인 경쟁력을 가진 영화는 5편 수준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숫자상으로는 수십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지만, 관객이 실제로 접하고 선택할 수 있는 영화는 극히 일부에 그쳤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영화시장의 스크린 독과점은 특정 흥행작의 일시적 성공이나 예외적 사건이 아니었다. 지난 6년 동안 반복되며 시장의 기본값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독과점을 어떻게 봐야 할까. 「왕과 사는 남자」처럼 관객이 몰린 영화가 스크린을 많이 가져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쏠림처럼 보여도 속은 다를 수 있다. 본지는 그 차이를 데이터로 들여다봤다.

스크린 수는 흥행을 말하지 않는다

스크린을 많이 가져갔다고 다 같은 경우는 아니다. 관객이 몰려 스크린이 따라간 영화가 있고, 관객이 오기도 전에 스크린부터 배정된 영화가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스크린 과대배정 지수(ScOI)와 상영 과대배정 지수(ShOI)다. 관객 점유율 대비 스크린과 상영 회차를 얼마나 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1을 넘으면 스크린이 들어온 관객보다 많았다는 뜻이다. 아래 지수는 본지가 KOBIS 데이터로 직접 산출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전자다. 3월 한 달 전국 스크린의 약 40%를 가져갔다. 숫자만 보면 전형적인 독과점이다. 스크린 과대배정 지수(ScOI)는 0.54로 기준선 1을 밑돌았다. 이는 받은 스크린보다 들어온 관객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는 스크린 쏠림 자체를 탓하기 어렵다. 관객의 수요에 맞춰 스크린이 그만큼 많이 배정된 경우이다.

진짜 문제는 후자, 즉 관객이 오기도 전에 스크린부터 받은 영화들이다. 이들에게 스크린은 흥행의 결과가 아니라 흥행을 만들어내려는 조건이었다. 「메소드연기」는 관객점유율이 0.5%에 그쳤지만 스크린은 3.0%를 받아 ScOI 5.98을 기록했다. 관객 비중의 여섯 배에 가까운 스크린을 미리 확보한 셈이다. 「휴민트」도 비슷하다. 관객은 1.9%만 들어왔는데 스크린은 6.3%를 받았다. 「호퍼스」 역시 관객 6.5%이 들어왔지만 스크린 점유율은 13.1%였다. 둘 다 들어온 관객보다 스크린이 두세 배 먼저 배정된 셈이다.

이렇게 스크린을 미리 몰아주는 것이 왜 문제일까. 관객은 시간표에 자주 보이는 영화를 고르기 쉽고, 상영 회차가 많은 영화는 황금 시간대까지 차지한다. 결국 초반에 몰아준 스크린이 그대로 관객 수로 이어진다. 스크린 배정이 흥행의 결과가 아니라 흥행을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초반 스크린을 적게 받은 영화는 좌석을 다 채워도 노출이 부족해 관객 반응을 증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스크린을 미리 받았다고 그 자원이 효율적으로 쓰이는 것도 아니다. 스크린 독과점 비효율 지수(MII)가 이를 드러낸다. 많은 스크린을 받고도 좌석 판매율이 낮을수록 수치가 높아진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약 18%, 「아바타: 불과 재」는 약 17%,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약 15%로, 스크린 수는 많았지만 관객은 그만큼 오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올해 가장 흥행한 「왕과 사는 남자」다. 3월 MII가 29.6%로 상반기 최고치였는데, 이는 흥행작조차 일정 선을 넘으면 추가로 받은 스크린이 관객 유입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스크린점유율이 커질수록 스크린을 늘려도 효율은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잘되는 영화가 스크린을 많이 가져가는 게 뭐가 문제냐는 반론이 남는다. 문제는 그 한 편이 시장을 장악하는 순간, 그 피해가 관객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3월 극장에 걸린 41편 가운데 36편은 스크린을 거의 잡지 못해 입소문이 날 시간도, 관객이 발견할 틈도 없이 사라졌다.

피해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분명하다. 같은 시간대 극장에 가도 고를 수 있는 영화는 두세 편뿐이고, 보고 싶던 작은 영화는 밀려나거나 아예 간판을 내린다. 취향이 맞지 않는 관객은 결국 가장 많이 걸린 영화를 그나마 볼 만한 것으로 택하게 된다.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은 남은 선택지 중에서 고른 것에 가깝다. 다양성이 사라진 자리에서 관객의 취향은 좁아지고, 흥행작만 더 흥행하게 된다. 결국 관객이 잃은 건 영화 한 편이 아니다. 고를 수 있었던 선택지를 잃고, 취향을 넓힐 기회를 잃고, 무엇을 볼지 스스로 정할 권리를 잃는 것이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관객은 이 문제를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본지는 스크린 독과점이 관객의 영화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영화관 관람 경험 및 영화 선택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다른 연령대보다 영화관 이용이 잦고 소비에 적극적인 20대를 중심으로, 2026년 6월 5일부터 6일까지 이틀간 71명의 응답을 모았다.

응답자의 77.5%는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용어를 알거나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84.4%는 특정 영화가 지나치게 많은 상영관을 차지한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관객이 스크린 독과점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규제가 필요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40.8%)와 '매우 그렇다'(15.5%)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여 설문자의 절반 이상이 스크린 독과점을 막기 위한 규제에 공감하고 있었다.

실제 제작과 상영 현장을 경험한 영화 산업 종사자 역시 현재의 상영 구조가 관객의 선택을 넓히기보다, 이미 정해진 선택지만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립영화 감독인 차현우씨는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택된 영화만 보게 되는 구조"라고 지적하며, 스크린 비율 제한과 다양한 영화의 상영 기회 보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현우 독립영화 감독
차현우 독립영화 감독이 5월 23일 경기 수원시 경희대 국제캠퍼스 앞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스크린 독과점, 해결책은?

고정 부율제에서 변동 부율제로

배급사와 영화관이 입장료 수입을 나누는 비율을 부율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 영화산업은 상영기간과 관계없이 일정한 비율로 수입을 나누는 고정 부율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대형 영화에 스크린이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변동 부율제이다.

인하대 노철환 교수는 2016년 아시아영화연구 9권 1호에서, 개봉 초기에는 배급사 수익 비율을 높이고 상영 기간에 비례해서 영화관의 수익 비율을 키우는 변동 부율제를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영화관이 한 영화를 더 오래 걸어둘 이유가 생겨 중소 영화도 충분한 상영 기회를 얻는다. 다양한 영화가 더 오래 관객과 만나면서 관객의 선택권도 넓어진다.

영화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

앞으로 영화산업은 수익성만이 아니라 문화적 선택권과 다양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일부 영화만 걸리는 극장이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이 살아 있는 균형 잡힌 극장이 바로 그 모습이다.

스크린 독과점은 영화 산업이 발전함에따라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문제다. 하지만 대부분 특정 영화가 스크린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인상에 머물렀다. 본 기사는 KOBIS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 같은 독과점도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하여 문제의 본질을 데이터로 짚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 분석이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를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영화 추천 챗봇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를 추천받거나, 스크린 독과점 이슈와 관련된 질문을 해볼 수 있다.